[아르떼 칼럼] '적당한 때' 도착한 위스키

입력 2023-06-11 17:47   수정 2023-06-12 00:53

빛이 반사되는 투명한 술잔에 떨어지는 가볍지만 기름진 소리. 그리고 눈을 황홀하게 하는 빛깔이 나의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누군가 말했다. 위스키는 ‘액체로 된 햇빛’이라고. 연한 금빛, 진홍빛, 투명한 단풍나무 빛은 오묘한 색의 조합인 보석 호박(琥珀)을 연상케 한다.

연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자기 전 들이켜는 한 모금은 나의 ‘영혼(spirit)’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이 순간 이 호박빛 액체는 영혼을 치유하는 생명수가 된다(증류주는 영어로 ‘spirits’며 프랑스어로는 ‘Eau de vie·생명의 물’이다).
오케스트라를 닮은 위스키
입 안에 머금은 위스키를 목으로 넘기면 꿀 같은 달콤함과 바닐라의 은은함, 바닷물의 짠맛이 느껴진다. 때론 후추의 매운맛도 난다. 숨을 내쉴 때의 향은 나의 감각을 다시 깨운다.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 같다. 위스키는 내게 두 명의 미국 클래식 거장을 떠올리게 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이자 작곡자 그리고 피아니스트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유명해지기 전 ‘레니 앰버’라는 예명으로 불렸다. 그의 성 번스타인(Bernstein)은 독일어로 호박을 뜻하는데, 영어의 앰버와 같은 뜻이다. 이름 때문이었을까. 그는 평생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와 함께했다.

그가 진행하는 ‘번스타인의 청소년음악회’는 30여 년 전 빼먹지 않고 챙긴 TV 프로다. 번스타인은 그중 한 회차에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서양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러시아 출신 미국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위스키 사랑은 실로 엄청났다. 특정 브랜드의 스카치 위스키를 항상 가지고 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종종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맙소사. 난 내가 위스키를 너무 좋아해서 가끔 내 이름이 이고르 스트라위스키(Stra-whisky)인 것 같아!”
번스타인의 위스키 사랑
나는 ‘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에 가본 적은 없다. 그런데 몇 년 전 스코틀랜드를 주제로 기획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다. 15년 넘게 꾸준히 만나고 있는 독일의 바덴-바덴 필하모니와 함께였다.

이때 스코틀랜드에 깊은 인연이 있는 오이겐 달베르트(1864~1932)와 윌리엄 월리스(1860~1940) 등 두 작곡가를 알게 됐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이자 스코틀랜드 영웅과 같은 이름인 월리스의 ‘마리타나’ 서곡을 접했을 때는 마치 스코틀랜드 북부의 하이랜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코로 느끼는 달콤한 향과 입으로 만나는 강렬함, 그다음 몰아치는 다양한 풍미 등 위스키와 이 음악은 실로 잘 맞아떨어졌다.

나는 위스키를 마실 때 가끔 나의 레시피로 만든 ‘크렘 브륄레’를 한두 스푼 곁들이곤 한다. 달달한 이 디저트는 위스키와 닮은 점이 많다. 위스키의 호박색과 크렘 브륄레 표면의 캐러멜색이 닮았고, 달콤쌉싸름한 향은 풍미를 돋워준다.

적당한 때 적당한 위스키 한잔 그리고 마리아주가 좋은 음악과 음식은 행복을 준다. 그런데 적당한 때라….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로부터 위스키 선물을 받고 이런 감사 편지를 보냈다. “보내주신 위스키는 적당한 때 도착했습니다. 물론 위스키에 적당하지 않은 때란 결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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